라면을 끓여다오. 마이콜 완상후기玩嘗後記


11th fear 님의 아기공룡 둘리 이야기를 주욱 읽다가 평소 생각했던 것 하나를 정리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아기공룡 둘리 시리즈에 등장했던 그 많은 조연 중에서 가장 인상 남는 조연을 꼽으라면 단연히 '마이콜'을 꼽고 싶습니다.






마이콜 이 나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기공룡 둘리 는 어린이용 만화가 될 수 없습니다.
20세기 한국현대사의 가장 아픈 문제 중 하나인 흑인혼혈 ( 입에 담기도 힘든.. 가장 더러운 표현으로 '튀기' ) 이 어린이 만화에 나온다니!!

그러나 김수정 선생은
흰 피부 큰 코 금발머리에 대한 동경 과 단일민족선민사상이 지배하던 '대한민국' 5공 시대에 
존재 자체가 대한민국의 부끄러움으로 치부되고, 사회에 번듯한 직장이라곤 가질 수도 없고, 
비록 가수를 꿈꾸지만 재능은 없어 (..) "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 " 같은 수준 낮은 노래나 부르면서 ,
같히 놀아 주는 대상이라고는 '희대의 악당' 둘리 무리 (..) 밖에 없는 이 혼혈인(混血人)을 당당히 만화에 가장 중요한 조역으로 끌어올립니다.




아기공룡 둘리 의 세계에서는, 흰 피부의 백인 유창한 영어를 하는 자, 가진 자 배운 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마이콜 같은 사회 약자들이 주인공입니다
.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이런 만화가 86년도 88년도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거행하면서 선진조국건설을 부르짖던 군사정권시대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20년이 흐른 요즘도 사회의 약자, 소수자, 비정규직을 옹호하면 모(某)나라당 국회의원 한테 "좌빨이니.. 배후가 있니.." 이런 식으로 태클 들어오는데,
감히 '29만원' 가카께서 영도하시는 "한강에 유람선이 떠 있는 아아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어두운 면을 조명해??


이 화려한 축제의 장(場)에 마이콜의 자리는 있을 수 있었을까요?
20년이 흐른 지금은 과연 마이콜의 자리가 있을까요?

 

5공 시절 그 서슬퍼렇던 문화담당검열자들이 정신줄을 잠시 놓았던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한편으론 아동용 만화 라는 눈가림으로 저 가위질 전문가들의 눈을 완벽하게 속인 작가적 역량일 수도 있죠.
아니면, 예술의 눈과 아이들의 눈이 일치하는 그 순수의 세계가 저 병신들한테 승리 한 것일까요?    


어쨋든 김수정 선생은 순수한 아이들의 눈과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로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 중 하나를 ,

재미있지만 지나치게 희화화 되지 않고 [樂而不喜]
슬프지만 지나치게 비참하지는 않는 [哀而不悲]
 
'예술의 가장 위대한 경지'로 풀어 내는 데 성공한 듯 싶습니다.



그래서 마이콜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아기공룡 둘리 는 단순한 어린이용 만화가 아니라고 봅니다.
문득 마이콜의 라면송을 들으며, 구공탄에 끓인 라면이 먹고 싶어지는군요.

그런데 요즘 구공탄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 진 모르겠네요. ^^;

 



p.s.
이후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란 작품이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김수정 선생의 원작보다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정 선생이라면 아픔도 웃김으로 슬픔도 놀이로 그려냈을 것입니다. 

비록 현실이 힘들지라도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 보다는 이 쪽이 더 고단수가 아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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