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와 청열약(淸熱藥)
본초의 청열약을 공부하다 보면 항상 "이 청열약이란 약들이 양방의 항생제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차갑고 쓴 맛을 가진 지모, 서각, 생지황, 황금, 황련, 황백, 목단피, 적작약 등의 청열약은 폐렴, 만성화된 감기, 피부병, 아토피, 패혈증, 콜레라 등 급만성 질환, 중증 질환에 쓰는 바, 이는 양방에서 항생제를 쓰는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
청열약과 항생제, 맛과 성질도 비슷하고 효과도 비슷한 둘을 여러 측면에서 비교해 보았다.

( 補陰補腎之劑의 대표격인 육미지황탕에 들어간 목단피, 택사는 항염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은사 박찬국 교수님의 지론이다. 염증이 없어져서 몸이 제대로 된 正氣를 키운다. )
한방에서는 모든 병의 90%는 감염성(혹은 염증성) 질환이라고 본다. 한방에서 질병의 90%를 감염성 질환이라고 하는 이유는 열 가지 종류의 병이 있을 때 병원체가 열 가지로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같은 병균이 들어오더라도 그 병균이 몸을 침입한 단계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양-한방 간의 병리관적 차이점은 매우 중요하니, 필자가 생각하기로 항생제와 청열약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방의 인체관에서는 인간에게는 氣分과 血分이 있다고 한다. 氣分은 바깥을 도는 기능을 총칭하고 血分은 안을 도는 기능을 총칭한다. 감염성 질환이 몸을 침입하게 되었을 때 이것을 '外邪에 감염되었다. [外感]' 고 한다. ( 外感은 한의학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전해져 내려오는 아주 오래된 용어이다. )
외감이 처음 시작되는 부위가 바로 氣分 이다. 기분에 외사가 들어와 초기 감염이 시작된 증상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초기 감기 증상이다. 으슬으슬 춥고 맑은 콧물이 나오고 떨리고 하는.
초기 감기만 가지고서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 하지도 않으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고질병도 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며칠 간 앓고 난 뒤 스스로의 힘으로 외감을 기분의 바깥으로 몰아 낼 수 있으며, 오히려 이 과정에서 몸 속에 쌓여 왔던 쓰레기들을 정리해서 몸이 더 가벼워지기도 한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가벼운 감기 이후에 몸무게가 약간 빠지면서 몸이 오히려 더 가벼워진 경험을 한 두번 정도는 해 보셨을 것이다. 나도 두어 번 감기 이후에 몸무게가 4kg 정도 감량되었던 기억이 있다. ( 비만이다 흑흑 )
문제는 병이 기분의 단계에서 더 악화되었을 때 발생한다. 氣分에서 外感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심해져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한의학에서는 '혈분으로 침입했다' 고 말한다. 일전에 포스팅한 정기신혈 편에서 血에 대해 '인간 생명 활동의 신비로운 총체이자 인체구성의 마지막 단계가 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한 바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감염성 질환이 사람의 기분을 상한 정도 로는 생명이 위험하지 않으나 그것이 혈분을 상하게 되면 인체의 근본적인 기능이 심각한 수준으로 실조하게 되고 그 결과 죽음에 이를 수도 있게 된다는 뜻이다. 콜레라 말라리아 페스트 등 급성 전염성 질환이 전부 혈분을 상하게 한 결과 사람이 죽게 된다.
매독 등 만성 악성 질환들 역시 혈분이 상했기에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고 또한 잘 낫지 않는 것이다. 곧 처음에 예로 든 폐렴, 만성화된 감기, 피부병, 아토피, 패혈증, 콜레라 등 중병은 전부 혈분병이라 할 수 있다.
한방에서는 혈은 '차가워서도 안되지만 너무 뜨거워서는 안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염증으로 인해 혈이 파괴된다는 것은 혈이 너무 뜨거워져서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폐렴 매독 아토피 등의 병증은 모두 혈중에 염증이 가득하고 혈이 너무 뜨거운 증상을 동반한다. 혈분에 열이 깃든 증상으로 대표적인 게 불면과 야간발열, 야간에 땀이 나는 것[浸汗]이 있다.
이때 혈이 제 기능을 하게 만들기 위한 급선무가 바로 당장 혈을 식혀 주는 것이다. 혈을 식혀 준다면 혈이 제 기능을 찾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혈을 식혀 주면 혈이 혈분으로 기어 들어온 염증과 싸워서 그 염증을 다시 기분으로 쫓아 내게 도울 수 있다. 이때 혈을 식혀 주는 약이 바로 차고[寒] 쓴[苦] 청열약이다.
청열약은 쓰고 차디찬 성질이 강한데 항생제 역시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항생제는 몸 속에 떨어지지 않는 염증이 있을 때 쓰는 바, 이는 청열제의 기능과 유사하다. 곧 항생제는 천연의 청열제를 정제하고 공업화해서 만든 약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약들이 ( 청열약이라면 황금 황련이 다르고 , 항생제라면 Monobactam 와 Penicillin 이 다르듯 ) 다소간의 특징과 효능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혈분의 열을 친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 또한 항생제와 청열약은 매우 차갑기 때문에 오래 쓰면 공통적으로 혈을 상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청열약은 염증 증상이 있을 때 급하게 단기간으로는 쓸 수는 있으나 장기간 복용하게 되면 자칫 혈을 상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열약이 치료 효과가 있는 이유가 바로 차가워서이니, 몸에 맞지 않는 사람-혈분에 이미 염증이 없거나, 혈분이 차가운 사람-에게 쓸 경우 그 지나친 차가운 편중이 문제가 될 것은 당연지사이다.
따라서 일단 급한 증상으로 청열약을 쓰더라도 혈분 염증 증상이 사라지면 바로 투약을 중단해야 하며 , 혈분 염증 증상을 없애고 나서는 2단계 치료로 들어가야 한다. 2단계 치료란 무엇인가. 염증이 혈분으로 기어 들어가게 만든 이유를 제거하고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병이 혈분으로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기분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기분에서 혈분으로 염증이 기어 들어가니까. 따라서 혈분염증을 다 제거하고 난 뒤엔 기분에 든(남은) 염증도 제거해주면서 허약해진 기혈분을 모두 보충해 주는 치료가 들어가야 염증이 다시 깊이 침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의 모든 염증 질환 치료는 이와 같은 공식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다. 곧 기분-혈분으로 이어지는 병의 발전 단계 이론을 바탕으로 치료에도 병의 단계를 살펴서 단계적으로 적합한 약물 투여를 하는 것이다. 혈분병에는 청열약을 쓰며, 기분병에는 마황 계지 자소엽 형개 박하 국화 시호 등의 해표약을 주로 써야 한다.
곧, 양방의 항생제도 - 비록 몸에 해롭다고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나 - 염증이 당장 급하다던지 해서 필요한 경우엔 단기적으로는 복용 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쓰지 않으면 혈분에 깃든 당장 끓는 열을 없앨 수 없고, 그 열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의 혈분이 염증을 빨리 제거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항생제를 써도 염증이 만성적이 되어 항생제를 오래 처방 받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엔 한의학의 눈으로 볼 땐 항생제만 써서는 만성 염증을 치료할 수 없다. 청열약은 염증을 직접적으로 쳐 없애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염증을 몸이 처리하는데 잠시 도움을 주는 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가 항생제를 먹고 급한 불을 꺼서 약을 먹을 때는 증상이 좀 감소한다 하더라도, 약만 끊으면 바로 재발한다는 것은 환자의 몸 상태가 혈분으로 염증이 계속 침입하는 상태 , 그런 불균형적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이 때는 마땅히 염증이 계속 혈분으로 기어들도록 만드는 몸의 불균형을 치료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치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기분에서 혈분으로 염증을 보낼 수 없도록 기분의 염증을 제거하고 체질을 튼튼히 하는 치료를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여성은 만성 중이염, 인후염으로 2년 째 항생제를 처방 받는 경우가 있다. 이 여성의 경우 지금의 만성 중이염이 발생한 뒤로부터는 가벼운 감기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몸이 좋아서 감기를 안하는 게 아니라 ( 이 여성은 지금 만성적인 인후통과 동시에 심한 만성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심한 짜증도 동시에. ) 이미 기분에 감기 기운(염증)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가벼운 감기를 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여성에게는 청열약을 투여 당장 급한 혈분 염증을 치료하고 , 이후 기분에 들어 있던 만성적인 감기 기운을 빼고 나서야 감기를 다시 하게 될 것이다. 만성적인 중이염도 그리 해야만 근본적으로 약을 끊어도 쉽게 재발하지 않을 수준으로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1. 병이란 90%가 감염성 질환이다.
2. 감염성 질환은 기분에서 혈분으로 발전한다. 혈분으로 발전하면 각종 만성 질환이 된다.
3. 청열약은 혈분에 사열을 식힘으로써 혈이 사기를 바깥으로 몰아낼 수 있게 도와 주는 효능이 있다.
항생제는 청열약과 거의 비슷하다.
4. 항생제와 청열약은 근본적으로 오래 쓰면 인체의 혈을 상한다.
5. 청열약은 병을 단계적으로 바깥으로 몰아낸다는 치료 원칙이 있으나, 항생제는 주로 증상에 맞추어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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