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의 형성 과정과 임진왜란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동의보감>. 위 사진과 같은 책이 총 28권으로 이루어진 이 고서(古書)는 한의사가 아닌 일반인들이라도 '그 이름을 한 번 쯤 들어보지 않았다면 한국인이 아니다.' 라고 싶을 만큼 유명한 책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한문으로 된 서적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서적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데 반해, 일반인들과 <동의보감>의 실제 내용과 의의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면 대다수 사람들이 심각하게 잘못된 인식들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전에 인터넷을 보다가 다음과 같은 리플을 보게 되었습니다.

위의 리플처럼, 많은 분들이 <동의보감>이라는 책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임진왜란 시기 전쟁의 필요성에 의해" 혹은 "배고프고 헐벗은 민중들을 위해" 성의(聖醫) 허준이 혼자서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죠. 사람들이 이처럼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이은성씨의 역작 <소설 동의보감> 과 그것을 바탕으로 제작된 수 편의 흥행 드라마들이 큰 영향을 준 듯 합니다.

( 한 때 인기 드라마 허준. "손목을 내놓아라" 참고로 전 단 한 편도 본 적 없습니다. 겜방에 사느라고
그리고 허준이 손목을 잘릴 뻔 했다는 증거도, 허준이 산청에 살았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 )
사실 <동의보감>이 한 개인의 천재적 그리고 헌신적 노력으로 이루어진 작품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은, '이씨 조선처럼 찌질한 국가가 <동의보감> 같은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 리가 없다'는 사고 방식과 서로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왜적의 침략 앞에 조선이란 나라는 전부 찌질했지만 충무공 이순신 혼자서 신비한 힘으로 왜적을 물리쳤다'는 신화적 기억 처럼,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동의보감>은 그렇게 무슨 '신비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죠.

( 혼자서 거북선을 타고 큰 칼 한번 휘두르니 왜적의 모가지가 우수수수 했다라.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충분한 병력과 합리적 전략, 우수한 무기와 그리고 지도력으로 이긴 것이죠.
단, ‘기적의 명랑해전’ 빼고. )
만약 정말로 <동의보감>이 민중을 사랑하던 한 개인이 전란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저술한 것이라면, <동의보감> 내용 대부분은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약재와 간단한 치료법, 그리고 전쟁기간 동안 발전한 ( 주로 외과적인 ) 의학 내용으로 가득해야 할 것이겠죠. 그러나 <동의보감>은 서문에서 그 편찬 목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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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宗王은 몸조리를 하는 방법으로써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의학에 관심을 두고 백성들이 병으로 앓는 것을 걱정하여 丙申年(1596年)에 太醫로 있던 許浚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즘 朝鮮이나 中國의 의학책들은 모두 변변치 않고 보잘 것이 없는 抄錄들이므로 그대는 여러 가지 의학책을 모아서 좋은 의학책을 하나 편찬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사람의 병은 다 몸을 잘 調攝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므로 修養하는 방법을 먼저 쓰고 藥과 針, 뜸은 그 다음에 쓸 것이며 또 여러 가지 처방이 煩雜하므로 되도록 그 요긴한 것만을 추려야 할 것이다. 산간벽지에는 의사와 약이 없어서 일찍 죽는 일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약초가 많이 나기는 하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니 이를 분류하고 지방에서 불리는 이름도 같이 써서 백성들이 알기 쉽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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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서문은 제일 중요한 편찬 목적으로 의약에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핵심을 모아서 한 권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 약재 옆에 한글(당시 용어로 언문)로 이름을 써 놓은 것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가적인 목적에 불과할 뿐입니다.
곧 <동의보감>을 편찬하게 된 목적은 '수 천년간 쌓여 온 방대한 의서 중 핵심만 모으고 군더더기를 제거하여 정리한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사람들의 상식과는 달리, '전쟁의 필요로 만들어 졌다' 라던지 '전란기 배고픈 백성들을 위해 향약(鄕藥)을 집대성 했다' 이런 이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약재 옆에 한글로 이름 써 놓은 것 외엔 말이죠.
만약 이것이 가난한 백성을 위한 책이라면 핵심만 모아서 한 두 권짜리 에센스 요약을 만들어야 되는 것이죠. 분량이 28권씩이나 되는데, 당장 급하고 가난한 상황에서 누가 언제 다 공부할지. 실제로 번역판 <동의보감>인 중 하나인 법인문화사 판은 깨알 같은 글자로 씌여 있음에도 그 페이지 수만 1천 6백 페이지에 달합니다 완전 바이블입니다 바이블.
이번엔 <동의보감>의 실제적인 본문 구성 내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동의보감>의 차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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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목차
참고문헌목록
내경편(內景編) :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몸 속의 정,기,신,혈 ( 오늘날 용어로 보자면 호르몬, 체액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오장 ( 간장 심장 폐장 등 ) 육부 ( 위장 대장 소장 등 ) 자궁, 수면과 꿈, 대변, 소변 등의 기능과 질병, 그 치료법
외형편(外形編) : 바깥에서 보이는 수, 족, 가슴, 허리, 배, 생식기 등등의 기능과 연관된 질병, 치료법
잡병편(雜病編) : 감기, 만성피로, 소화불량, 몸에 나는 종기 , 전염병 등등 여러 잡다한 질병에 대한 설명과 치료법
본초 : 약재설명
침구 : 침구경혈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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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급하게 써먹을 수 있는 에센스 요약집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체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정연하게 전개한 총론집에 가깝죠. 만약 <동의보감>이 에센스 요약집이라면 현실에 당장 써먹을 수 있게 병명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겠죠. 전란기에 배고픈 백성 중 감기로 끙끙 앓는 사람이 있다고 치면, 그 사람을 앞에 두고 당장 '이러쿵 저러쿵 해서 감기를 치료한다'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요. 감기가 걸린 배고픈 백성을 앞에 두고 어떻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고 있을 시간이 없죠.
그럼 이번에는 각론으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한 질병인 요통을 보겠습니다. 동의보감 제 권 외형편 요문(腰門, 요즘 식으로 하면 ‘허리 챕터’ )의 구성입니다.
( <동의보감> 요문(腰門)은 가장 <동의보감> 적인 특징을 가진 대표적인 챕터입니다. '작은 동의보감' 이라고 할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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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허리)의 명칭 치수 구조
맥법 과 기타 잡다한 설명 약간
요통의 종류 : 10가지 요통의 종류
1번 신허요통
신허요통의 정의, 증상, 기전
신허요통의 치료법, 가장 효과적이었던 처방들
처방전
2번 담음요통
담음요통의 정의, 증상, 기전
담음요통의 치료법, 가장 효과적이었던 처방들
처방전
3번 식적요통
식적요통의 정의, 증상, 기전
식적요통의 치료법, 가장 효과적이었던 처방들
처방전
....중략....
( 10번 요통까지 설명하고 난 후 )
요통 중 매우 위급한 증상들
요통 중 치료하기 힘든 증상들
요통을 다스리는 생활습관, 운동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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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요문은 이와 같은 얼개로 한 꼭지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의보감 전체 챕터 구성이 이와 큰 차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허리가 아픈 민중을 위해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하는 약재를 모았다던지 간단한 치료법을 모았다던지 전란기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던지 이런 내용은 요문(腰門) 뿐 만 아니라 <동의보감> 전체를 통틀어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동의보감>의 편찬 목적 자체가 역대의 의서(醫書)들 중에서 가장 유용한 이론과 설명, 치료법과 처방을 가려 모아보자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이 나오기 이전 요통 관련 의서들은 총합해서 수백 권이 넘었을 것입니다. 한 개인의 힘으론 죽을 때 까지 봐도 다 이해하지 못할 분량인 것은 당연하며, 그 중에는 애써 찾아서 읽어 볼 필요가 없는 질 낮은 내용도 많이 있었을 것이죠. 신허요통(腎虛腰痛) 이라는 요통 질병 치료법에 대해 A 라는 책은 이론 설명을 잘해놓았는데 거기서 제시한 처방은 별 효과가 없고, B 책은 이론은 대충인데 처방은 정말 효과 있다고 하면, 그러면 '신허요통' 이라는 챕터를 만들면서 이론은 A 라는 책에서 가져오고 처방은 B 라는 책에서 가져오자. 그러면 훗날 공부하는 사람들이 A 책 B 책 다 볼 필요 없이 <동의보감> 한 편만 보면 되지 않겠는가.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것이 바로 동의보감의 편찬 목적인 것입니다.
이 사업은 한 개인이 자신의 기억 하에서 당장 쉽게 쓸 수 있는 경험방을 적어 놓은 식의 작은 사업이 아닙니다. ( 한 개인의 역량이라고 해서 무시하는건 아닙니다만 ^^; ) 일단 먼저 수백만 권의 의서를 모아야 하고, 그 내용을 나누고 분석 평가해야 되고 이후 편집까지 해야 합니다. 이런 방대한 사업을 허준 혼자서 했을까요. 절대 허준 혼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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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浚은 儒醫 鄭碏과 太醫 楊禮壽, 金應鐸, 李命源, 鄭禮男 등과 함께 編輯局을 설치하고 책을 편찬하기 시작하였다. 대략적인 체계를 세웠을 때 丁酉年 난리를 만나 의사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졌기 때문에 편찬은 할 수 없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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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보감 서문 중. 5명의 주관 편찬자가 모여 사업을 진행하여 얼개를 만들었으니 )
이미 서문에서부터 다섯 명의 어의가 모여서 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관직을 가진 유의(儒醫)라던지 조정에서 의학 쪽 업무를 맏은 고위관료들까지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업 규모나 사업 진행이 모두 '국가적 역량'이 들어간 사업이지 허준 개인의 사업이 아니지요.
<동의보감>의 참조 문헌 중에 명나라의 <본초강목> 이 있습니다. 이 책은 동의보감의 편찬이 시작 되기 고작 2년 전에 완성된 책입니다.

( <본초강목>. 동 시기 명나라 서적 중 유일하게 <동의보감>에 따라올 유명세를 가진 명작.
그 만큼 <동의보감>이 감히 다른 의서들이 넘볼 수 없는 '명작'입니다. )
지금으로부터 무려 4백 여 년 전, 교통과 통신이 미비하고 명나라에 한번 가려면 편도로 3-4 개월 씩 걸리던 그 시절, 이런 책이 완성되었다는 정보는 어디서 들었으며 입수는 도대체 누가 어떤 방식으로 했을까요. 명나라 안에서도 아직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았을 최신 레포트를 조선의 의가(醫家)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입수할 수 있었을까요. 마치 오늘날 외국의 유명 교수가 개인적으로 발표한 논문을 바로 구해서 다음날 즉각 써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에서 쓸 만한 의서가 하나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사신에 따라가는 의관(醫官)이 공무(公務)의 차원에서 즉각 달려가서 그걸 구해옵니다. <동의보감> 은 이러한 노력을 들여 만들어진 국가적 사업인 것이죠.
( <소설 동의보감>에 나오는 내용처럼, 조선의 다른 관료들은 당파싸움이나 하는데 비해 사행길에 따라간 허준 개인이 개인적 노력을 기울여 구해 왔으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랬을 지도 모르죠. 그러나 필자는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는 데 이번에 새로 나온 오만원 권 한 장 겁니다. )
중요한 사실은 <동의보감> 을 위시한 조선의 주요 저작물들이 전부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곧 조선은 의료에 관련된 범 국가적 대규모 편찬사업을 수 십 차례 벌릴 정도의 문화적 역량을 갖춘 국가였다는 것이죠. 당시 전 세계에 그런 나라가 몇 개나 되었을까요. 밤 낮 총질 칼질 쌈질이나 하던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동 시기 중국(명나라)을 대표하는 의서로 평가 받는 <의학입문> <본초강목> 등은 이 쪽이 오히려 국가적 사업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 으로 만들어진 개인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국가의 문화 역량이 곧 군사적 역량을 뜻하지는 못하고 ( 1, 2 차 대전 전의 프랑스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덩치에 비해 전쟁이 일단 시작되면 한 달 만에 쓸리거나 항복하는 역할 전문 배우 우리의 프랑스. ) 임란 전 선조의 30여 년의 치적은 수백 년 간 전쟁질만 한 '전쟁광' 일본의 침략을 만나 묻히고 말았지만, 전란 전 조선은 당나라 현종의 개원지치(開元之治)를 연상케 하는 문화적 역량을 가진 국가였음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지금도 '수준 높은 내용과 전체적인 규모, 편찬의 질서정연함에서 동북아 3국에서 가장 뛰어난 종합의서' 로 꼽히는 <동의보감>인 것이죠.

다시 결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동의보감>과 임진왜란의 관계는 어떠한가.
<동의보감>은 전란 전 발달한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타고 국가적 역량으로 뒷받침되는 국책사업 중 하나로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나 재료를 모으고 얼개를 다 잡아놓은 그때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사업이 중단되고 말았죠. ( 이 과정에서 반쯤 작업된 중요 자료들은 누가 어떻게 보존시켰을까요. <소설 동의보감>에서 처럼 다른 의관들은 다 내팽개 치고 피난 가는 와중에 허준 혼자서 지고 갔을까. 그건 정말 모를 일입니다. ) 그렇게 전쟁 중에 중단된 사업이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했을 때 국왕이 죽으면 '도의적 책임'을 지고 관행적이자 형식적인 귀양을 갔던 어의 허준이 귀양지에서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많으니' 혼자서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여 완성시킨 것입니다.
( 높은 사람들은 편한 귀양생활을, 천민들은 노역에 시달리며 힘든 귀양생활을 했다죠. 조선시대 의관 중 유일하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 양평군' 의 칭호를 받은 허준은 최소한 노역은 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곧 <동의보감>의 완성에 있어 허준의 개인적 역량과 노력이 가장 중요한 마무리를 지은 것은 사실이며, 따라서 허준 저 <동의보감> 이라 불러도 손색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의보감>의 참고도서 목록과 실제적 구성에서 엿보이듯, 수천권 수만권에 달하는 재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은 이미 임란 전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기초가 완성되어 있었음을 부정 할 수는 없는 것 되겠습니다.
임란 전 조선이 전부 찌질하게 당파 싸움이나 하고 그랬는데, 허준이란 특별한 개인 혼자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의보감>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 조선이란 나라와 그 나라를 이끌어 갔던 선조들이 '안되는 집안, 안되는 나라. 그래서 남의 식민지가 되는 게 당연하다' 라는 게 아니라는 점.
바로 이 것을 저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p.s. <동의보감>의 실제적인 내용과 그 독창적인 내용 전개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생략 합니다. 이건 정말 전문적인 내용이라서요. 다만 미래엔 반드시 더 높이 평가 받을 만큼 수준 있는 내용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덧글
소하 2009/07/01 21:46 # 답글
처음으로 <동의보감>을 봤을 때가 생각납니다. 허준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수많은 중국의 의서들이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 적지 않게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도 세상에 떠도는 상식(허준이 직접 지은 책)으로만 알고 있었거든요.안녕하세요. 소하님. 동의보감은 또 어떻게 보셧는지요. ^^;
동의보감 텍스트의 주축을 이루는 건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의서' 라기 보다는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의 의서 들이죠. 사실 근대 이후 한의학 ( 중의학은 좀 맛이 이상해 졌죠. 그넘의 '공산주의식 유물론, 과학화' 때문에 ) 의 형체를 이룬 게 바로 금원사대가 였으니.
다만 동의보감은 금원사대가의 모든 서술을 그대로 배낀 게 아니라 금원사대가가 남긴 방대한 저술과 그들의 천재적인 발상들 - 서로 색깔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 을 한 권의 책에 체계적으로 정리 융합시켰다는 데서 '진정한 천재(!)' 라고도 할 만 합니다.
중국에서 비슷한 작업을 해낸 게 있다면 이천의 의학입문 정도를 거의 유일하게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의학입문은 동의보감 보다 훨씬 분량이 적고 다루는 영역도 적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의 저술이구요. 체계화도 동의보감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 ( 그렇지만, 내용의 깊이는 꽤 괜찮죠. )
요컨데 동의보감 은 국책사업 이다 라는 것이죠. 의학입문 이 원맨쑈 라면 동의보감 은 조선이란 나라가 펼치는 단체 군무(群舞)와 비슷합니다. 원맨쑈도 멋질 땐 멋지지만, 군무도 멋질 땐 정말 멋지죠.
비유하자면 '팔만대장경' 같은 것이라 할까요. 장경 조각조각은 서역에서 가져왔지만 그걸 집대성해서 후일까지 남긴 건 팔만대장경이죠. 그것도 국가적 사업으로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다면 그 가치는 매우 큰 것이죠.
위대한 석가모니가 인도인임을 부정할 필요 없듯, 위대한 금원사대가가 중국인이라는 것도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 2009/07/02 07:55 # 삭제 답글
허긴 그래요. "전녀위남법", "투명인간이 되는 법" 같은 것도 있죠.너무 고도의 의술이 반영되어 있어서, 현대 의학으로도 풀어내기 어렵겠네요;;;
에로거북이 2009/07/02 20:25 #
http://ktmd0c.egloos.com/1455601참고 바랍니다.
무지(無知)는 죄가 아니란 말도 있지만, 한편으론 무지가 가장 큰 죄란 말도 있습니다.
2009/07/02 23:4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궁극사악 2009/08/03 14:36 # 답글
음...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특히 유학자들에 의해 의학의 기본 이론이 만들어졌다는 새로운 사실을 배우게 되었네요^^역시 글을 많이 읽으면 배우는바가 많아져 즐겁달까 ㅎㅎ
음 안녕하세요 ^^ 졸필을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학자들에 의해서 의학의 기본 이론이 만들어졌다기 보단,
그냥 당시(금원사대가의 시대, 12-13세기) 식자층이 전부 유학자들이었다, 유학이 당시 대세 였다 (..) 라는 게 정답일 듯 합니다. ( 유학천국 불신지옥 )
재미있는 건 , 이런 유학적 의가들에게 배척 당했던 도교적인 내용들이 , 유교'총폭탄'원리주의(..) 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소중화' 조선의 <동의보감>엔 다수 수록되었다는 점입니다.
투명인간법 이나 전녀위남법(..) 같은 도술적인 내용은 뭐 당시인들의 과학상식 미비로 인해 잘못 들어간 걸로 (..) 친다 하더라도, 그 외에도 특징적인 도교 이론 체계가 동의보감엔 상당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충(蟲) 이론이죠. '모든 병은 몸속에 깃든 충이 만들고 충이 생기고 번식하고 바깥으로 기어나온다','충을 잡아야 한다' 이런 이론은 금원사대가 같은 유학자들은 꿈에도 자기 책에 쓸 수 없었을 (..) 내용입니다. 당시에 '비과학' '미신' 으로 배격 받던 '도교'적인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현대의학의 시대에 와서 현미경, 미생물학 등이 발전하면서 , 그만 '충' 이론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는 걸 보여줘 버린 것이죠. (..)
하여튼 동의보감은 참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매우 종합적인 의서입니다.
실제로 동의보감 이후에 나온 조선, 중국의 의학 서적은 다시 골수 유학적 이론체계로 돌아갑니다.
( 사상의학으로 잘 알려진 <동의수세보원> 보면 어떠한 신비주의던 완전 배격합니다. "나는 골수부터 유학자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엔 안 믿겠다!!")
어떤 면으로 보면 동의보감 만큼의 넓은 오지랍(..)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이겠지요. 시대와 편찬진의 역량의 한계일지도요.
지나가던과객 2009/08/03 14:43 # 삭제 답글
동의보감은 간단하게 얘기해서 의학대백과사전이군요. 이걸 마무리 지은 허준아저씨가 대단하군요.책에 내용채운다고 손목이 많이 피곤했겠습니다.
에로거북이 2009/08/03 15:23 #
네 정말 대단하죠.개인적 추측이긴 하나, 임진왜란이라는 전란 덕에 <동의보감>이 지금처럼 독특한 의서로 마무리 될 수 있었을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관찬 의서 , 공동 작업이란 건 ( 요즘날도 그렇지만 ) 아무래도 무미건조하고 형식적이 되기 딱 좋거든요. 대표적인 게 중국 송나라의 <태평혜민화제국방> 조선의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같은 것들 이죠. 규모는 방대하나 일관성과 이론이 없는 ..(..)
반면에 근대 중국을 대표하는 의서로 꼽는 명나라 이천의 <의학입문>, 청나라 정국팽의 <의학심오> 같은 건 , 이론과 내용의 깊이는 대단하나 분량이 매우 적고 넓은 분야를 커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둘 모두 오늘날 식으로 표현 하자면 '민간 작업물' 이죠.
<동의보감>은 자료취합에는 국가적 공동 작업으로 방대한 영역을 커버하고, 최종 마무리엔 일개인의 천재적인 지혜로 일관성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저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관찬과 개인편찬의 장점을 두루 가진 독특한 서적이지요.